영화 '밀정'과 '암살'의 실존 인물인 '조선 최고 총잡이' 김상옥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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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1-09-16 조회 : 2,659본문
출처 : 디스페치뉴스그룹
한국사 강사 최태성은 지난 1일 방송된 JTBC '방구석 1열'에서 이야기를 전했는데요. 김상옥 의사는 '쌍권총의 전설', 조선 최고의 총잡이'로 불립니다. 그는 앞서 여러 영화에서 그려졌습니다. 박희순이 '밀정'에서 연기한 김장옥, 하정우가 '암살'에서 연기한 '하와이 피스톨'인데요. 최태성은 '밀정'에서 그가 스스로 발가락을 자르는 장면을 보고 "좀 약한데? 현실은 엄청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김상옥은 1919년 여학생을 칼로 내리치는 일본 경찰을 보게 됩니다. 이에 항일을 결심하고 만주로 떠나는데요. 이후 국내로 밀입국, 총독 사이토를 암살하기 위해 작전을 펼칩니다. 하지만 일이 늦춰지면서 실패하고 마는데요. 그리고 1923년 1월 12일 종로경찰서에 홀로 잠입, 폭탄을 투척합니다.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들이고 고문했던 일본 심장부였죠. 하지만 독립 운동을 향한 시련은 계속됐습니다. 최태성은 "며칠 뒤 일본 경찰이 그의 은신처를 포위했다"고 했는데요. 이어 "경찰 20명이 달려드니까 (김상옥 의사가) 팍 튀어나오면서, 총을 쏘며 맨발로 눈밭 위를 달려나갔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일본 형사부장인 다무라를 사살했습니다. 이 외에도 지휘관 등 여러명을 크게 다치게 했다는데요. 김상옥 의사는 이 과정에서 동상에 걸립니다. "결국 발가락 하나를 잃는다. 영화 장면은 실제다"라고 털어놨죠. 최태성은 "(그를 잡기 위해) 동원된 일본 경찰이 1,000명이다. (김상옥 의사는) 3시간 반 동안 총격을 벌였다"고 했는데요. 이어 "맨 마지막 총알이 떨어지자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쏴 생을 마감했다"고 전했습니다.
김상옥 의사는 죽기 직전까지 일제에 대한 저항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1923년 '동아일보' 기사에서 이를 다뤘는데요. 보도엔 "총을 쏘다 옆집에 들어가 ‘내게 이불 좀 주시오. 그걸 쓰고 탄환을 좀 피해 몇 명 더 쏘아죽이고 죽을 테니’ 했다"는 내용이 있었죠. 또 "총을 맞아 숨진 후에도 육혈포에 건 손가락을 쥐고 펴지 않고, 숨이 넘어가면서도 손가락으로는 쏘는 시늉을 했다더라"라고 되어있는데요.
지금까지도 깊은 울림을 주는 김상옥 의사의 이야기, 영상으로 보시죠.
아래 관련 링크를 클릭하시면 사진과 함께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한국사 강사 최태성은 지난 1일 방송된 JTBC '방구석 1열'에서 이야기를 전했는데요. 김상옥 의사는 '쌍권총의 전설', 조선 최고의 총잡이'로 불립니다. 그는 앞서 여러 영화에서 그려졌습니다. 박희순이 '밀정'에서 연기한 김장옥, 하정우가 '암살'에서 연기한 '하와이 피스톨'인데요. 최태성은 '밀정'에서 그가 스스로 발가락을 자르는 장면을 보고 "좀 약한데? 현실은 엄청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김상옥은 1919년 여학생을 칼로 내리치는 일본 경찰을 보게 됩니다. 이에 항일을 결심하고 만주로 떠나는데요. 이후 국내로 밀입국, 총독 사이토를 암살하기 위해 작전을 펼칩니다. 하지만 일이 늦춰지면서 실패하고 마는데요. 그리고 1923년 1월 12일 종로경찰서에 홀로 잠입, 폭탄을 투척합니다.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들이고 고문했던 일본 심장부였죠. 하지만 독립 운동을 향한 시련은 계속됐습니다. 최태성은 "며칠 뒤 일본 경찰이 그의 은신처를 포위했다"고 했는데요. 이어 "경찰 20명이 달려드니까 (김상옥 의사가) 팍 튀어나오면서, 총을 쏘며 맨발로 눈밭 위를 달려나갔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일본 형사부장인 다무라를 사살했습니다. 이 외에도 지휘관 등 여러명을 크게 다치게 했다는데요. 김상옥 의사는 이 과정에서 동상에 걸립니다. "결국 발가락 하나를 잃는다. 영화 장면은 실제다"라고 털어놨죠. 최태성은 "(그를 잡기 위해) 동원된 일본 경찰이 1,000명이다. (김상옥 의사는) 3시간 반 동안 총격을 벌였다"고 했는데요. 이어 "맨 마지막 총알이 떨어지자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쏴 생을 마감했다"고 전했습니다.
김상옥 의사는 죽기 직전까지 일제에 대한 저항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1923년 '동아일보' 기사에서 이를 다뤘는데요. 보도엔 "총을 쏘다 옆집에 들어가 ‘내게 이불 좀 주시오. 그걸 쓰고 탄환을 좀 피해 몇 명 더 쏘아죽이고 죽을 테니’ 했다"는 내용이 있었죠. 또 "총을 맞아 숨진 후에도 육혈포에 건 손가락을 쥐고 펴지 않고, 숨이 넘어가면서도 손가락으로는 쏘는 시늉을 했다더라"라고 되어있는데요.
지금까지도 깊은 울림을 주는 김상옥 의사의 이야기, 영상으로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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