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김춘원(金春園), 형제의 의로 빛난 길 > 빛으로 남다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자료실

빛으로 남다

독립운동가 김춘원(金春園), 형제의 의로 빛난 길

페이지 정보

등록일 : 25-08-29 조회 : 723

본문

bccc1a9ca27d34f655f87039c6333d22_1756443976_7465.png

▲ 김춘원 선생 ( 유화 이미지로 복원)


1. 항일의 뜻, 혈육으로 이어지다 

김춘원(金春園)선생은 1891223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형 김상옥(金相玉) 의사의 친동생으로, 형과 함께 독립운동의 길을 걸으며 뒤에서 묵묵히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했다. 혈육의 정으로 이어진 항일의 의지는,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향한 굳은 결심으로 빛났다.

 

2. 철물점에 담긴 조국 사랑
19206, 선생은 형 김상옥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가업으로 내려오던 철물점을 담보로 제공하고, 거액 2,000원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헌납했다. 이 자금은 권총 구입과 제반 무장활동 비용으로 쓰였다. 같은 해 10, 형이 상하이로 망명한 뒤에도 선생은 비밀 경로를 통해 국내에 잠입한 독립운동 자금과 물자를 전달하며, 형의 투쟁을 꾸준히 뒷받침했다.

 

3. 순국 후에도 이어진 고난의 그림자
19231, 김상옥 의사는 효제동에서 최후까지 항전하며 순국했다. 이 사건으로 연루된 김춘원 선생은 체포되어 고문을 당했으나 228일 석방되었다. 그러나 형제의 헌신으로 인해 가세가 기울어, 1927년에는 철물점이 일본인에게 넘어가는 등 가족은 큰 시련을 겪었다. 노모와 대가족의 생활은 점차 곤궁해졌고, 결국 막대한 부채로 가문은 파산에 이르게 되었다.

 

4. 증언 속에 남은 가족의 아픔
1927420일자 <동아일보>“70세 노모와 13식구가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다라며 김상옥 순국 이후 몰락한 집안을 보도했다. 선생의 딸 김태순(97)아버지는 고문 후유증으로 늘 약에 의지하셨고, 경찰이 수시로 들이닥쳐 집안에 평온할 날이 없었다, 자식들이라도 악질 순사들로부터 피해를 덜 보게 하려고 먼 곳으로 시집을 보내셨다고 전했다. 이 증언은 독립투사 가족이 겪은 일상의 고통을 생생히 보여준다.

 

5. 헌신의 기억, 국가가 기리다
김춘원 선생의 공적은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높이 평가되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조국을 위해 헌신한 선생과 그의 가족의 희생은 오늘날까지 후세에 깊은 감동과 교훈을 전한다.

 

자료 출처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인명사전

<동아일보> 1927.4.20. 김상옥 사후 쇠잔한 가정, 암담한 일가의 장래

오마이뉴스 (2025.4.15.) “김상옥·김춘원 형제 독립투사 어머니 김점순할머니를 회상하는 후손 김태순 여사와의 대담


 

회원로그인

접속자집계

오늘
369
어제
737
최대
1,567
전체
308,956
Copyright © 2021대한민국 최초 독립운동가 기념사업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