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곽경렬(郭京烈) 선생, 대한광복회의 청년 투사 > 빛으로 남다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자료실

빛으로 남다

독립운동가 곽경렬(郭京烈) 선생, 대한광복회의 청년 투사

페이지 정보

등록일 : 25-08-26 조회 : 1,862

본문




b1ed3b719328d768307dee0f46870341_1776907212_9527.jpg
 


29387afcd855ab7e3c5ce137350a6567_1756169072_5159.jpg   ◀ 곽경렬 선생 추모비(김제시 진봉면 심포리 산45)
67e617fafe17e5d2960930e7748d1630_1756170605_8559.png  ▲ 서도현 처단 보도자료(매일신보)


독립운동가 곽경렬(郭京烈) 선생, 대한광복회의 청년 투사

1901917일 전라북도 김제군(金堤郡, 현 김제시) 진봉면(進鳳面)심포리(深浦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곽봉수(郭奉守). 무기 탈취·친일부호 처단·군자금 모집에 앞장선 전북 김제 출신 독립운동가

 

1. 15세의 결단, 항일 무장투쟁의 길로

대한광복회는 박상진(朴尙鎭채기중(蔡基中) 등이 풍기광복단(豊基光復團)과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의 인사들을 통합하여 대구(大邱)에서 조직한 혁명단체로서 전국적인 조직과 더불어 만주의 독립군기지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졌던 1910년대 최대의 국내 항일조직이었습니다. 대한광복회는 군자금을 조달하여 만주의 독립군기지에서 혁명군을 양성하고 국내에 혁명기지를 확보한 후 적시에 폭동으로 독립을 쟁취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군자금 수합이 친일부호들의 외면으로 예정대로 추진되지 못하고, 이로 인하여 혁명 계획이 난관에 봉착하게 되자, 대한광복회는 국민적 각성과 함께 식민성 지주들에 대한 응징으로 친일부호를 처단하는 활동을 펼쳐 나가셨습니다.

 

2. 무장 활동과 의열 투쟁

그리하여 경북·전남·충남의 세 지역에서 악성 부호들을 처단했는데,19165, 김상옥, 유장렬, 한 훈과 함께 전라남도 보성군 조성면 일본 헌병분견소를 습격하여 친일 인사 서도현과 양재학 등을 처단하고 장총 3정과 군도 1자루 탈취하고 일경과 주구배1 숙청에 전력하셨습니다.

1916년 조성헌병대 습격 사건으로 체포망을 피해 만주로 망명하였다. 1917년 다시 국내 잠입하여 항일 활동 지속셨습니다. 광복회 조직이 밀정의 밀고로 위기 직면하자 지하에 은신하며 1920전북 옥구군 대야면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 전개하십니다.

-----

'주구배'는 직역하면 ‘개잡이 같은 자들’이라는 뜻으로, 일제에 빌붙거나 친일한 인사들, 또는 밀정들을 경멸적으로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3. 암흑 속에서도 빛난 의지, 3년간의 옥중 투쟁

곽경렬 선생은 대한광복회 활동 중 1924년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모진 고초를 겪으셨습니다. 전주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으신 후, 1926년까지 옥고를 치르셨으나, 긴 수감 생활 속에서도 조국 독립을 향한 선생의 굳건한 의지는 결코 꺾이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옥중 투쟁은 이후의 독립운동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4. 정부 포상과 추모건국훈장 애국장과 심포리 추모비

대한민국 정부는 곽경렬 선생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기리고자 198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으며,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으로 다시금 그 공훈을 높이 기렸습니다. 선생의 사진은 현재 전해지지 않지만, 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 산45에는 선생의 위대한 업적을 기억하기 위한 추모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 추모비는 선생의 고향에서 영원히 빛나는 애국 정신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애국지사 남촌 곽경렬 선생 추모비 >

곽경렬은 전라북도 김제 출신으로 1915년 어린 나이로 항일 비밀결사 대한광복회에 가입해 일본 헌병대 무기 탈취, 친일 부호 처단, 군자금 모집 등 활발한 항일운동을 펼쳤다. 1916년 일본경찰의 체포망을 피하여 한때 만주로 망명하였다가 이듬해 다시 국내로 잠입하여 계속 활동하였다. 1918년 친일파 이종국이 광복단조직을 밀고함으로써 재차 체포망이 압축되자 지하로 은신하였다. 1920년 전라북도 옥구군 대야면에서 군자금모금활동을 전개하였으며, 1924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26년 전주지방법원에서 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82년도에 건국포장을 수여 하였다.

(위치: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 산45)

참고: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인명사전

 

회원로그인

접속자집계

오늘
532
어제
893
최대
1,620
전체
442,215
Copyright © 2021대한민국 최초 독립운동가 기념사업회 ALL RIGHTS RESERVED.